“돌아와 누웠는데, 병이 심하여 토하고자 하였으나 토하지 못하며 말하였다. 어떤 물건이 목구멍 사이에 있는 걸린듯하면서 내려가지 않는다.”
<태조실록 7년 8월 26일>
이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목이물감으로 힘들어하는 기록이다. 조선의 왕과 왕비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많은 왕은 일에 지치고, 공부에 지치고, 신하의 등쌀에 지쳤다. 왕비도 마찬가지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궁궐 밖을 나갈 수 없는 왕비는 구중궁궐의 법도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처럼 정신적 압박이 심하면 몸에 탈이 난다. 대표적 증상이 매핵기(梅核氣)다. 한의학에서는 매핵기를 ‘매핵질애어후지간 객불출연불하(梅核窒碍於喉之間喀不出嚥不下)’로 설명한다. 목에 매실 열매인 매핵이 걸린 듯한 까칠까칠한 이물감이 느껴지지만 뱉어지지도, 삼켜지지도 않는 불편함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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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의 일종인 매핵기는 칠정(七情)인 희(喜) 로(怒) 우(憂) 사(思) 비(悲) 공(恐) 경(驚)의 심적 충격을 받은 결과다. 이로 인해 담기(痰氣)가 인후 사이에 식도경련 등의 장애를 일으키면 인후(咽喉)가 자극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일성록에는 매핵기로 고통 받는 왕과 왕비가 종종 등장한다. 특히 선조는 매핵기의 악화로 목소리마저 변했다.
"옥음(玉音)에 이상이 생긴 지 몇 해가 되었습니다. 신하 모두가 근심하지만 병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는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더 악화되기 전에 의관(醫官)이 진찰하고 증세에 맞는 약을 쓰면 치료될 수 있습니다.
<선조실록 6년 1월 3일>
선조는 질환을 '마음의 병'이라고 자가 진단했다. 임금은 쉰 목소리 뿐 아니라 가래인 담(痰), 구토, 목이물감 등 총체적인 아픔을 겪었다. 또 담이 목으로 흐르는 매핵기 증상이 만성화되면서 쉰 목소리가 고질화되고, 때로는 음성도 나오지 않았다. 선조의 증상을 어의들은 ‘화(火)’로 표현했다. 전통시대에 인후의 질병은 거의 화로 표현했다.
효종비인 인선왕후 장씨의 병명은 아예 매핵기로 적시돼 있다. 효종 즉위년 7월 15일 승정원일기에는 중전의 매핵기가 재발하여 제조와 의관들이 숙직하며 약을 논의하자는 약방(藥房)의 의견이 실려 있다.
매핵기의 근본적 치료는 스트레스 해소다. 어의들은 왕과 왕비의 심신 안정과 면역력 강화 처방을 했다. 또 증상의 개선을 위해 소염작용이 있는 형개, 연교, 치자 등을 사용했다. 매핵기, 구취, 소화불량 등에는 가미사칠탕(加味四七湯), 교감단(交感丹) 등이 처방됐다. 인선왕후는 교감단과 진피탕(陳皮湯)으로 치료했다.
복신 향부자 등으로 구성된 교감단은 수승화강(水升火降), 즉 수(水)를 올리고 화(火)를 내려준다. 기기(氣機)의 울결(鬱結), 기체(氣滯), 기울증(氣鬱症) 치료에 효과적이다. 동의보감에는 ‘칠정에 상하여 밥 맛이 떨어지고, 가슴이 막히고 답답한 증상을 크게 개선한다’고 기록돼 있다. 진피탕은 헛구역질과 손발이 싸늘해지는 것을 막는다. [논객닷컴=김대복]
김대복한의학 박사로 혜은당클린한의원장이다. 주요 논문과 저서에는 '구취환자 469례에 대한 후향적 연구', ‘입냄새 한 달이면 치료된다’, ‘오후 3시의 입냄새’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