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냄새 100문 100답] <37>광해군 불안장애와 구취, 불면증과 입냄새 - 김대복 한의학박사의 구취 의학
강병원 기자 kbw@hankooki.com
구취는 성인의 50% 가량에서 난다. 심한 입냄새는 사회생활의 적이다. 성격이 소극적으로 변하고, 자신감이 떨어질 수 있다. 또 건강에도 위협적이다. 김대복 한의학박사(혜은당클린한의원장)가 입냄새 궁금증 100가지를 풀이한다. <편집자 주>
한의학박사 김대복 원장
<사례>
33세 남성입니다. 조선시대 임금인 광해군은 형과 동생을 죽였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책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광해군의 건강은 어땠나요.
<김대복 한의학박사 의견>
먼저,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광해군은 67세까지 살았습니다. 조선의 왕 평균 수명이 40대 중후반임을 감안하면 장수를 한 셈입니다.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 사이의 등거리 외교를 한 군주로 강인한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소심하고, 걱정 많은 보통 심장의 임금이었습니다.
현대의학으로 보면 불안장애(anxiety disorder) 모습이 있습니다. 불안장애는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심리적 질환입니다. 불안장애는 지나친 걱정이 오랜 기간 계속될 때 불면, 근 긴장 등의 다양한 신체증상이 일어납니다.
광해군 입장에서 세상을 보면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광해군에게 환경은 가혹했습니다. 왕위 계승 경쟁을 할 때 주위는 거의 적들이었습니다. 선조, 영창대군, 임해군, 명나라 모두 광해군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국내 정치기반도 약했습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집권당인 대북파는 역사상 볼 수 없는 초강경 정책으로 정국을 얼어붙게 했습니다. 계속되는 고변 속에 광해군도 종국에는 대북파를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영의정 이원익은 도성 밖으로는 영이 전달 안 됨을 한탄 합니다.
임진왜란 직후의 경제 환경은 최악이었습니다. 150만 결에 이르던 전답이 50만 결 이하로 축소됐고, 지주계급의 백성 착취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대동법을 임시로 시행했으나 지주의 이해관계로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고, 신분제도 심하게 요동쳤습니다. 국제정세는 후금의 성장, 명의 쇠퇴로 급변하고 있었습니다. 광해군은 실리외교를 주창했지만 신하들은 명분만 내세워 대책 없이 명나라 편에 섭니다.
나라를 잘 경영하려는 책임감 강한 광해군은 외로움과 분노, 답답함으로 병이 심해집니다. 임금 스스로 화증(火症)과 광증(狂症)을 이야기 합니다. 10년(1618년) 6월 17일 육성입니다.
“내가 평소부터 화증(火症)이 많은데 요즈음 상소와 차자가 번잡하게 올라온다. 광증(狂症)이 더욱 심해져 살펴볼 수가 없다.”
화증은 분노와 스트레스의 다른 표현이고, 광증은 극도의 불안증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왕은 즉위 초부터 죽을 찾습니다. 이는 소화기관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실제로 임금은 영의정 이덕형에게 체질 고백을 합니다. “어려서부터 몸에 열이 많고, 이것이 쌓여 화증이 되었다. 항시 울열증(鬱熱症)을 앓고 있다.”
광해군은 화증으로 인해 음식 섭취를 제대로 못하고 불면증에도 시달립니다. 인목대비는 광해군 즉위년에 ‘왕이 하루에 두 끼 밖에 들지 못하고, 그나마 한두 수저에 그친다. 수면도 서너 시간 밖에 취하지 못한다’고 걱정합니다. 이 무렵 광해군은 울열증과 안질에도 시달립니다. 울열과 눈 질환은 간의 기능과도 연관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간의 화는 피를 뜨겁게 하여 기가 위로 치솟고, 혈맥의 통행을 방해한다. 간의 열을 내리면 오장이 안정돼 눈의 증상이 호전된다’고 설명합니다.
결론입니다. 광해군은 걱정 근심 불안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는 신체의 기능 저하로 이어져 울열, 안질환, 소화불량, 불면증, 체중감소로 이어졌습니다. 실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 증상은 입마름, 구강 설태, 구취 등 전반적인 입냄새가 나기 쉬운 조건입니다. 광해군은 오래 살았지만 폐위와 나라 걱정으로 심한 마음의 고통 속에 산 비운의 군주입니다. <김대복 혜은당클린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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