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냄새 100문 100답] <44>세종시대 당뇨 입냄새 건강과 대상포진 구취 의학 - 김대복 한의학박사의 구취 의학
강병원 기자 kbw@hankooki.com
구취는 성인의 50% 가량에서 난다. 심한 입냄새는 사회생활의 적이다. 성격이 소극적으로 변하고, 자신감이 떨어질 수 있다. 또 건강에도 위협적이다. 김대복 한의학박사(혜은당클린한의원장)가 입냄새 궁금증 100가지를 풀이한다. <편집자 주>
한의학박사 김대복 원장.
<사례>
25세 대학생입니다. 세종대왕은 고기를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육류는 입냄새의 원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종대왕도 입냄새로 고생하셨을까요.
<김대복 한의학박사 의견>
먼저,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세종대왕이 구취로 힘들어한 기록은 없습니다. 육류를 즐긴다고 입냄새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소화력이 떨어질 때 구취 개연성이 있을 뿐입니다. 다만 임금은 오랜 기간 당뇨로 고생했습니다. 심각한 당뇨는 구취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세종시대는 의학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우리 체질에 맞는 향약정책, 침구전문의 제도 실천, 교육 방법 등 의학 시스템을 체계화 했습니다. 또 의학의 학문적 토대도 마련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의방유취 편찬입니다. 세종은 북경에 사람을 보내 중국의 역대 의서를 폭넓게 수집, 비교연구와 활용의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의방유취에서 파생된 창진집(瘡疹集)은 훗날 의원이 되기 위한 필독서로 선정됩니다.
육식을 좋아한 세종은 비만형 체질입니다. 왕으로 즉위한 1418년에 아버지인 태종은 “주상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고, 몸도 뚱뚱하니 건강을 좀 챙겨야 한다”고 걱정합니다. 왕자 시절의 세종은 운동을 멀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등극 후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세종은 조선의 왕 중에서 군사훈련인 강무에 가장 많이 참여합니다. 또 수시로 종친들과 격구를 하고, 매 사냥을 즐겼습니다. 가끔 궁궐 밖으로 말을 타고 나가는 민정시찰도 했습니다. 세종은 운동부족 왕은 아니었습니다. 운동을 해도, 살이 잘 빠지지 않은 체질로 이해됩니다.
강한 체질이 아닌 세종은 여러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젊은 날부터 10여년 다리가 붓는 통증을 겼었고, 30대부터는 당뇨를 앓았습니다. 심한 안질, 부종, 풍증이 모두 당뇨에서 유발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문헌에 임질로 표기된 면역력 저하로 고통 받았습니다. 임금이 스스로 밝힌 증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병은 비록 나았다가도 발작 한다.”(1438년 4월 28일) “조금이라도 화를 내면 찌르고 아픈 증세가 즉시 발작 한다.”(1438년 5월 27일)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하면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이 더욱 심하다. 앞으로 2~3일 동안 말을 하지 않겠다.”(1442년 11월 11일)
이 같은 증세는 대상포진으로 이해됩니다. 심한 통증의 대상포진은 면역력 저하로 일어납니다. 신경절에 잠복한 수두 바이러스가 다시 활성화 돼 지각신경 부위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 감각이상, 붉은 반점, 수포 등이 나타납니다. 대상포진은 입냄새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극심한 통증은 수면장애, 극심한 스트레스를 부릅니다. 이는 구취를 유발하는 구강건조, 소화불량 등의 원인이 됩니다.
당뇨가 심하면 입이 자주 마르고, 과일향 같은 냄새를 풍깁니다. 혈중의 높은 당 농도가 혈액의 점성을 더하게 하고, 적은 인슐린 분비로 인해 아세톤 성분이 배출됩니다. 한의학에서는 당뇨를 췌장내분비계와 신장의 원기를 회복하는 치료법을 씁니다. 구체적으로 폐와 관련 있는 상소(上消), 위장과 연관된 중소(中消), 신장과 관련 있는 하소(下消)로 세분해 접근합니다.
대상포진은 한의학에서는 화독火毒)의 피부 노출, 췌장을 포함한 비(脾)의 약화로 인한 습열(濕熱), 체력저하로 인한 기혈응체(氣血凝滯)로 봅니다. 치료는 증상과 병변, 합병증을 감안한 처방을 합니다.
결론입니다.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세종은 많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구취를 앓았다는 내용은 문헌에 없습니다. 이로 보아 당뇨나 대상포진으로 힘들어했지만 입냄새 질환은 없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김대복 혜은당클린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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