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복의 구취 세상] 1. 원조 스타강사 공자와 노인 체취
입 냄새는 인류의 오랜 숙제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구취로 고민한 사람이 많다. 역사 인물과 입냄새에 관한 이야기를 한의학박사인 김대복 혜은당클린한의원장이 연재한다. <편집자 주>
성균관 대성전. ⓒ이지희 편집위원
[세종대왕신문=김대복 한의학박사] 인플루언서(influencer)는 영향을 주는 사람,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등의 온라인상에서 영향력이 지대한 사람이다. 유명 인플루언서는 구독자(follower)가 수십 만명, 수백 만에 이른다. 유명세는 오프라인에도 이어진다. 그렇기에 그들의 말 한마디, 글 한 줄의 힘은 그야말로 막강하다.
인류 역사상 4대 인플루언서를 꼽으면 예수, 석가, 공자, 마호메트라고 할 수 있다. 4대 성인(四大聖人)으로도 불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종교의 비조다. 유교는 다음 세상을 이야기하지 않아 종교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른 부분은 종교적 기능과 큰 차이는 없다.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중국 산동성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479년까지 72년을 산 그는 교육자이고, 사상가이고, 정치인이다. 산문을 쓰는 작가이며,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했다. 전통의 관습, 종교, 제도 등에도 깊이가 있던 공자는 배울 만한 사람이 있으면 달려갔다. 그가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 중 한 명이 무위자연설을 주장한 노자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공자상.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어린 시절부터 배움을 익힌 공자는 서른 살 무렵에는 세상 이치를 알고, 학문적으로 우뚝 서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박식한 사람이 된 그는 중국에서 최초로 학원을 세워 강의했다. 시경, 서경, 주역 등의 경전을 가르쳤다. 제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3천명이 넘어셨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와 성악설을 신봉한 순자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정치인으로서도 법무부장관 격에 해당하는 직위까지 올라간 공자는 당나라 현종에 의해 왕으로 추봉돼 문선왕'(文宣王)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공자는 기력이 쇠할 때까지 강의를 멈추지 않았다. 2천 500여 년 전은 춘추전국시대다. 위생 환경이 열악했다. 노인이 되어서도 강의하는 공자는 입냄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노년이 될수록 신진대사가 떨어지고, 입마름이 심해져 냄새가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욱이 말을 많이 하면 구강 건조가 심해진다.
생강밭 전북 완주군 봉동읍 일대는 생강 주산지다. ⓒ완주군청
박식한 공자는 이 같은 생리현상을 이기는 방법은 찾았다. 입냄새를 줄이는 섭생이 논어 향당편에 10여 가지 소개돼 있다. 주요 골자는 신선한 음식을 오래 씹는 것이다. 또 육류를 줄이고, 술을 절제하는 방법도 썼다. 특히 생강을 조금씩 입에 달고 살았다. 기(氣)를 수렴하는 생강은 신명(神明)과 통하는 식품이다.
입냄새 위생 관점에서는 항균, 살균작용에서 효과를 찾을 수 있다. 생강은 소화액 분비를 촉진하고, 위장운동을 활발하게 한다. 장내 이상발효를 억제하고 가스 배출을 원활하게 한다. 또 강한 살균작용이 있다. 소화를 촉진하면서도 항균작용을 해 부패를 막는다.
말을 할 때 입냄새가 나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공자는 당시에 강의를 많이 하고, 사람을 많이 만난 최고의 스타다. 공자는 대인관계 때 생강으로 입냄새를 막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조선의 임금 인종은 세자시절에 동궁의 관원들에게 생강을 선물하며 말했다.
"논어에서 공자의 섭생 기록을 보니, 생강을 끊이지 않고 먹었다. 이는 배부름이 목적이 아니다. 정신을 강하게 하고, 구취(口臭)를 제거하기 위해 복용한 것이다.“<중종 39년 5월 15일>
<글쓴이>김대복
한의학 박사로 혜은당클린한의원장이다. 주요 논문과 저서에는 '구취환자 469례에 대한 후향적 연구', ‘입냄새 한 달이면 치료된다’, ‘오후 3시의 입냄새’가 있다